90년대 여성들의 반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리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 회사와 맞짱 뜨는 세 여성의 이야기

영화 소개
2020년 10월에 개봉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이종필 감독이 연출하고 고아성, 이솜, 박혜수가 주연을 맡은 작품입니다. 1995년 대기업 삼진그룹을 배경으로 말단 여직원들이 회사의 환경오염 비리를 밝히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당시 실제 있었던 페놀 유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주요 출연진:
- 고아성 - 이자영 역: 삼진전자 생산관리3부 사원, 정의감 넘치고 똑부러진 성격
- 이솜 - 정유나 역: 회계팀 사원, 현실적이고 실행력이 뛰어난 참모 역할
- 박혜수 - 심보람 역: 마케팅팀 사원, 순수하지만 열정적인 성격
- 조현철 - 최동수 대리 역: 자영의 직속상관
- 김종수 - 봉현철 부장 역: 공장 책임자
- 김원해 - 안기창 부장 역: 회사 내 주요 인물
- 배해선 - 반은경 부장 역: 얼마 안 되는 여성 간부
1990년대는 한국 사회에서 고학력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되던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여성들의 위치는 여전히 취약했습니다. 특히 고졸 출신 여직원들은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해야 했죠. 이 영화는 그런 시대적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줄거리 요약
1995년, 대기업 삼진그룹의 말단 여직원들인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은 입사 8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커피타기와 잔심부름만 하는 일상에 지쳐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공고를 내립니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이자영은 회사의 심부름으로 공장에 갔다가 우연히 공장에서 폐수가 무단으로 방류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의문을 품은 이자영은 유나, 보람과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세 사람은 회사 내부 문서를 통해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회사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환경오염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회사 내부 문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강에 방류된 폐수에는 인체에 유해한 '페놀'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회사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환경부 조사를 피하기 위해 문서를 조작하고, 보고서를 위조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진실을 알게 된 세 친구는 비리를 폭로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폭로하면 그동안 노력해온 승진의 기회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회사 생활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양심과 정의를 선택합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와 재능을 활용해 회사 내부의 기밀 문서를 확보하고, 환경부와 언론에 제보하기로 결심합니다.
세 친구는 회사의 감시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성장합니다. 그들이 모은 증거는 마침내 언론에 공개되고, 회사는 큰 위기에 처합니다. 비록 그들은 회사에서의 자리를 잃게 되지만, 정의를 위한 그들의 용기는 사회에 큰 울림을 주게 됩니다. 결국 삼진그룹은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세 친구는 각자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감상 포인트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세 주인공의 케미스트리와 90년대를 생생하게 재현해낸 점입니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 세 배우는 각각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특히 각 인물이 가진 성격과 능력이 서로 다르면서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영화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 - 심보람(박혜수)
연출 면에서는 90년대 사무실 풍경, 패션, 소품 등을 세밀하게 구현한 점이 돋보입니다. 삐삐, 워드프로세서, 공중전화 등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시대적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했죠. 배정윤 미술감독의 세심한 작업은 청룡영화상 미술상 수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유쾌한 순간과 진지한 메시지를 적절히 배합한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 여성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코믹하게 그리면서도, 기업의 환경 오염과 여성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함께 다루고 있죠. 웃음 속에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은 관객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세 주인공이 비밀리에 회사 문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연대와 우정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 대사처럼, 그동안 억눌려 살아온 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영화 OST 음악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음악은 '달파란' 음악감독이 맡았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90년대의 감성을 잘 살린 선곡과 편곡이 돋보입니다. 엔딩크레딧의 8비트 아트웍을 기반으로 한 레트로한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요 OST 트랙:
- "난 멈추지 않는다" - 가수: 잼
- "넥타이부대" - 가수: 소방차
특히 "난 멈추지 않는다"는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곡으로, 주인공들의 굳은 의지와 용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곡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흘러나오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2024년 8월에는 이 영화의 OST 앨범이 오렌지 컬러 LP 형태로 발매되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4년이 지난 후에도 OST 앨범이 발매된다는 점은 이 영화 음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장점과 단점
장점
- 고아성, 이솜, 박혜수 세 배우의 뛰어난 연기 호흡과 케미스트리
- 90년대 시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한 미술, 의상, 소품 등의 디테일
- 유쾌한 코미디와 진지한 사회 메시지의 훌륭한 균형
- 현실적인 직장 내 차별과 불합리한 관행을 솔직하게 그려낸 스토리
- 환경 문제와 기업 윤리에 대한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
단점
- 실제 비리 고발 과정이 다소 단순하고 이상적으로 그려진 측면
- 일부 조연 캐릭터들의 깊이와 개성이 부족한 점
- 영화 후반부의 전개가 다소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
- 당시 시대상을 모르는 젊은 관객들에게는 공감대 형성이 어려울 수 있음
-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프로 했지만 역사적 사실과 차이가 있는 픽션 요소
이 영화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캐릭터 성장과 사회적 메시지에 집중하는 관객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히 90년대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아 더욱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영화 추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비슷한 주제나 분위기를 가진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이 영화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작품들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에린 브로코비치 (2000)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주인공이 대기업의 환경오염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 위치에 있던 여성이 거대 기업의 비리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히든 피겨스 (2016)
1960년대 인종과 성차별이 만연했던 미국 NAS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세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차별에 맞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2017)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 영화로,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와 선택을 그린다는 점에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국제시장 (2014)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특히 70-9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유사합니다. 시대적 배경과 감성을 느끼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합니다.
총평 및 별점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들의 당당한 반란"
5점 만점에 4점.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세 여성 주인공의 성장과 연대를 통해 보여주는 감동이 있는 작품입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단순한 오피스 코미디를 넘어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90년대 기업문화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등 여러 사회적 화두를 담고 있죠. 실제 있었던 페놀 유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점도 이 영화에 무게를 더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작은 사람들의 용기'에 주목합니다. 평범한 말단 직원들이 거대 기업의 비리에 맞서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큰 공감과 응원을 불러일으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대사처럼, 아무리 약한 위치에 있더라도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대중적인 영화의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싶은 관객
- 여성의 사회진출과 직장 내 차별에 관심 있는 관객
- 실화 기반의 사회고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 고아성, 이솜, 박혜수의 연기를 좋아하는 팬
지금 보면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전하는 메시지와 감동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