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피어난 인간성 - 영화 '소리도 없이' 리뷰
2020년 한국 블랙 코미디의 숨은 명작

1. 영화 소개
제목: 소리도 없이 (Voice of Silence)
개봉일: 2020년 10월 15일
장르: 범죄, 드라마, 블랙 코미디
러닝타임: 99분
감독: 홍의정 (장편 데뷔작)
출연진: 유아인(태인 역), 유재명(창복 역), 문승아(초희 역), 이가은(문주 역)
'소리도 없이'는 범죄 조직의 뒤처리를 담당하는 두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선과 악, 윤리적 딜레마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유아인과 유재명의 탁월한 연기 호흡이 돋보입니다. 장르적으로는 범죄 드라마이지만, 독특한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아름다운 시골 배경이 어우러져 기존 한국 범죄영화와는 다른 감성을 선사합니다.
특히 유아인은 이 작품을 위해 15kg 증량하여 마치 만화 속 캐릭터 같은 외형으로 변신했으며, 대사 없이 오직 표정과 몸짓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도전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영화는 2020년 개봉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제41회 청룡영화상에서 유아인이 남우주연상을, 홍의정 감독이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2. 줄거리 요약
충청도 시골, 말을 하지 못하는 태인(유아인)과 독실한 기독교인 창복(유재명)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파트너입니다. 태인은 양계장에서 계란을 생산하며 어린 여동생 문주(이가은)를 돌보는 생활을 이어가고, 창복은 태인에게 기도 테이프를 챙겨주는 등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시체를 처리할 때도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기도를 함께 하는 등 나름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단골이었던 범죄 조직의 실장 용석(임강성)에게서 특별한 부탁을 받게 됩니다. 부탁은 다름 아닌 유괴된 11살 소녀 초희(문승아)를 하루만 맡아달라는 것. 애초에 3대 독자인 초희의 남동생을 납치하려 했으나 계획이 틀어져 초희를 유괴하게 되었다는 용석의 말에, 창복은 내키지 않으나 어쩔 수 없이 수락합니다. 태인의 집에 초희를 데려온 두 사람은 소녀가 겁에 질려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초희는 의외로 어른스럽고 침착한 모습으로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다음날, 용석이 조직 내부에서 살해되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창복과 태인은 초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결국 다른 범죄자들의 조언을 통해 초희의 부모에게 직접 몸값을 요구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창복이 돈을 받으러 가던 중 사고를 당하게 되고, 태인은 홀로 초희를 돌보며 점점 정이 들게 됩니다.
태인의 집에서 문주와 함께 지내게 된 초희는 낡고 더러운 집안을 청소하고, 문주를 돌보며 가족처럼 지내기 시작합니다. 초희의 흠잡을 데 없는 성숙함과 재치는 태인을 감동시키고, 태인은 점차 초희에게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창복의 부재 속에 다른 범죄자들이 초희를 아동매매 조직에 넘기려 하자, 태인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과연 태인은 자신도 모르게 '유괴범'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의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3. 감상 포인트
독특한 연출과 톤: 홍의정 감독은 범죄와 납치라는 어두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블랙 코미디 요소를 가미하여 영화에 독특한 톤을 부여합니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잔혹한 범죄가 공존하는 세계관은 마치 코엔 형제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유아인의 무언의 연기: 전편에 걸쳐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온몸으로 연기하는 유아인의 무성영화 같은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입니다. 특히 표정과 눈빛만으로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들은 그의 배우로서의 깊이를 실감하게 합니다.
영상미와 음악의 조화: 박정훈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담아낸 농촌의 풍경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판, 울창한 숲과 같은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영화의 어두운 서사와 대비되며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인상적인 장면: 특히 태인이 초희를 찾아 필사적으로 유치원 버스를 쫓아가는 장면과 초희가 처음 등장할 때 쓰고 있던 토끼 가면을 벗는 순간은 영화적으로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합니다. 또한 태인과 초희가 함께 식사를 하며 형성되는 묘한 가족 관계는 이 영화의 감정적 축을 형성합니다.
아역배우들의 연기: 문승아와 이가은이 연기한 초희와 문주의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감정적 무게를 담당합니다. 특히 문승아는 단순한 납치 피해자가 아닌,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로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4. 영화 OST 음악
'소리도 없이'의 음악은 장혁진, 장용진이 작곡한 것으로, 영화의 독특한 톤과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특히 엔딩 테마 음악은 영화의 여운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OST는 잔잔하면서도 때로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의 음악을 "김지운의 <장화, 홍련>,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이은 또 하나의 명품 OST"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시골의 한적한 풍경과 함께 흐르는 서정적인 선율은 영화의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대비되며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음악감독 장용진은 이전에 2015년 '대배우', 2017년 '기억을 만나다', 2019년 '신의 한 수: 귀수편'을 작업한 경험이 있으며, '소리도 없이'에서는 장혁진과 함께 협업하여 더욱 풍성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긴장감과 서정성을 오가는 음악적 전개는 이 영화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합니다.
5. 장점과 단점
장점
- 독창적인 연출과 신선한 이야기 구조
- 유아인과 유재명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
- 아름다운 촬영과 시골 풍경
- 통념을 깨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
- 깊이 있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
-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우화적 구조
단점
- 다소 느린 전개로 인한 지루함
- 모호한 결말이 일부 관객에게는 불만족스러울 수 있음
- 유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윤리적 질문
- 일부 캐릭터들의 동기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음
- 범죄영화로서는 인과관계가 다소 약함
이 영화는 범죄와 유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선과 악의 이분법을 벗어나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탐구합니다. 홍의정 감독은 영화에 대해 "선한 의도로도 잘못된 결과를, 나쁜 의도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회색지대에 대한 탐구는 이 영화의 큰 매력이지만, 동시에 명확한 메시지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줄 수 있습니다.
6. 비슷한 영화 추천
만약 '소리도 없이'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다음과 같은 영화들도 함께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파라사이트 (기생충) - 사회적 계급과 인간 본성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봉준호 감독의 작품
- 버닝 - 이창동 감독의 미스터리 드라마로, 비슷한 농촌 배경과 모호한 서사 구조를 지님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김지운 감독의 작품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톤
- 범죄와의 전쟁 - 윤종빈 감독의 범죄 드라마로, 유사한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있음
- 세 번째 살인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 영화로, 도덕적 모호함을 다루는 방식이 유사
7. 총평 및 별점
'소리도 없이'는 범죄 장르의 관습을 탈피해 독특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범죄자들의 일상을 따라가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성에 주목한 영화는 우리에게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홍의정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 높은 연출과 유아인, 유재명으로 대표되는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범죄 장르에 식상함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소리도 없이'가 선사하는 신선한 경험을 놓치지 마세요.
8. 저작권 안내
이 리뷰에 포함된 영화 '소리도 없이'에 관한 모든 정보는 공개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의 저작권은 루이스픽쳐스, BROEDMACHINE, 브로콜리픽쳐스(공동제작)와 배급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에 있으며, 이 리뷰는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든 영화 이미지와 관련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와 배급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고 싶으신 분들은 정식 상영관이나 합법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리뷰가 영화 '소리도 없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