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녀' 리뷰 -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화려한 복수극

1. 영화 소개
제목: 악녀 (The Villainess)
개봉일: 2017년 6월 8일 (한국), 2017년 5월 21일 (칸 영화제 초연)
장르: 액션, 범죄, 스릴러
러닝타임: 123분
감독: 정병길
주요 출연진: 김옥빈(김숙희 역), 신하균(이중상 역), 성준(정현수 역), 김서형(권숙 역)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내가 살인범이다'로 주목받은 정병길 감독의 후속작 '악녀'는 2017년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한국 액션 영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특히 김옥빈이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가를 받는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 시퀀스와 복잡한 플롯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악녀'는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진 여성 숙희의 잔혹한 복수극을 그린 작품이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중심의 하드코어 액션을 선보이며 장르적 확장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제26회 부일영화상, 제54회 대종상 등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기술상과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김옥빈은 제23회 춘사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 줄거리 요약
어린 시절, 숙희(김옥빈)는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때 그녀는 살인자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휘파람 소리만 들었다. 이후 아버지의 친구라는 장천에게 납치되어 인신매매 조직에 팔려갔지만, 암살자 이중상(신하균)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된다. 중상은 숙희를 암살자로 키워내고, 시간이 흐르며 둘은 서로에게 애정을 느껴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신혼여행 중 중상은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사라진다. 남편의 죽음에 복수심을 품은 숙희는 중상이 속했던 조직을 파괴하기 위해 살인 광풍을 일으키다가, 결국 경찰에 포위된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암살 실력을 눈여겨본 한국 정보기관은 그녀를 비밀 요원으로 영입한다.
얼굴 성형 수술을 받고 '연수'라는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 숙희는 기관에서 신체 훈련과 사회 적응 교육을 받으며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기관은 그녀에게 10년간 복무하면 자유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연수는 딸 은혜를 낳고 첫 암살 임무를 시작한다. 과제를 수행하던 중 그녀는 타겟의 딸 앞에서 살인을 저질러 버리고 도망친다.
약속대로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제공받지만, 기관은 연수를 감시하기 위해 정현수(성준)라는 요원을 옆집에 배치한다. 시간이 흐르며 현수와 연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연수는 다음 암살 목표가 죽은 줄 알았던 전 남편 이중상이라는 걸 알게 되어 충격에 빠진다.
중상은 연수를 찾아와 그녀가 과거의 숙희임을 알아보고 위협한다. 연수는 현수가 기관의 스파이임을 알게 되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와중에 중상이 폭발을 일으켜 현수와 은혜는 목숨을 잃게 되고, 연수는 복수를 위해 중상을 추적한다.
마침내 중상과 대면한 연수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는 휘파람 소리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연수는 분노에 찬 결투 끝에 그를 살해한다. 모든 것을 잃고 경찰에 포위된 연수는 미친 듯이 웃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3. 감상 포인트
▶ 혁신적인 액션 연출
'악녀'가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단연 혁신적인 액션 시퀀스다. 특히 영화 오프닝의 1인칭 시점 액션 신은 관객들이 주인공의 시선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마치 FPS 게임을 보는 듯한 묘한 경험을 선사하며, 이후 카메라가 뒤로 빠져나와 주인공의 얼굴을 드러낼 때의 반전은 정말 영화적 쾌감이었다.
또한 고속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오토바이 추격 장면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칼싸움 장면은 할리우드에 견줄만한 한국 액션 영화의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특히 김옥빈의 투혼이 돋보이는 장면들이었는데, 그녀가 직접 소화한 액션 신의 리얼함이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 김옥빈의 열연
김옥빈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감정을 억누른 차가운 킬러로서의 모습부터 딸을 사랑하는 따뜻한 엄마, 그리고 복수에 불타는 악녀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면모를 한 사람이 소화해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액션 신에서 보여준 그녀의 몰입도는 경의를 표할 만하다.
이 대사는 작품 속 숙희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대사다. 감정을 배제한 채 암살자로 살아온 그녀가 결국 사랑과 가족이라는 감정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비극을 암시한다.
▶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
'악녀'는 시간적 흐름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비선형적 내러티브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이 때로는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며 전체 그림이 드러나는 쾌감이 있다. 특히 숙희의 정체성 형성과 관련된 과거 회상 장면들은 현재 그녀의 행동 동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4. 영화 OST 음악
'악녀'의 음악을 맡은 구자완 음악감독은 영화의 진한 감정선과 강렬한 액션을 뒷받침하는 효과적인 사운드트랙을 제작했다. 그는 '몽타주', '특별수사', '7년의 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인정받은 음악가로, 이 영화에서도 독특한 음악적 색채를 보여준다.
특히 메인 테마곡인 'The Villainess'는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과 현대적 사운드의 융합으로 영화의 다이내믹한 분위기를 잘 표현해냈다. 동서양 선법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이는 곡으로, 영화의 박진감과 색채를 더해준다. 액션 신에서 흐르는 'Act'와 'Escape' 같은 곡들은 템포가 빠르고 긴장감 있는 리듬으로 관객들의 심장 박동을 높인다.
반면, 숙희와 그녀의 딸 은혜의 정서적인 순간들을 담은 'If Only' 같은 곡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인물들의 감정적 깊이를 더해준다. 이처럼 구자완의 OST는 액션과 드라마라는 영화의 두 축을 음악적으로 균형 있게 지원하면서 전체적인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2019년에는 영화 '악녀'의 OST가 정식으로 CD와 LP로 발매되어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영화의 강렬한 인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귀중한 음반이라 할 수 있다.
5. 장점과 단점
장점
- 압도적인 액션 연출과 카메라워크
- 김옥빈의 열연과 몰입도 높은 액션 퍼포먼스
- 화려한 영상미와 스타일리시한 연출
- 중간중간 등장하는 감정선의 깊이
- 여성 중심의 하드코어 액션이라는 신선한 시도
단점
- 다소 복잡한 내러티브로 인한 혼란스러움
- 과도한 액션에 비해 부족한 캐릭터 설명
- 일부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액션 장면
- 조금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성
- 후반부에서 약해지는 스토리의 개연성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악녀'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 영화 시장에서 보기 드문 여성 주인공의 하드코어 액션 영화라는 점이다. 김옥빈이 보여준 육체적 연기는 그 자체로 경이롭고, 1인칭 시점의 오프닝부터 다양한 액션 시퀀스까지 기술적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반면에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는 때로는 영화를 따라가기 어렵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고, 액션에 치중한 나머지 캐릭터 발전이나 동기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소 무리한 전개가 있어 몰입이 방해되는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악녀'가 한국 액션 영화에 남긴 공헌은 부인할 수 없다. 기술적 완성도와 시각적 스타일, 그리고 김옥빈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6. 비슷한 영화 추천
만약 '악녀'의 스타일과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 영화들도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 아저씨 (2010)
원빈 주연의 이 액션 스릴러는 '악녀'와 마찬가지로 복수를 테마로 한 작품이다. '악녀'를 '김옥빈 버전 아저씨'라고 부르는 평도 있을 정도로, 진중한 분위기 속 폭발적인 액션의 조합이 유사하다. 특히 보호해야 할 아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 킬빌 시리즈 (2003-2004)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은 여성 암살자의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악녀'와 테마적 유사성이 있다. 우마 서먼이 연기한 더 브라이드 캐릭터와 김옥빈의 숙희는 강인한 여성 액션 캐릭터의 대표주자로 볼 수 있다.
▶ 니키타 (1990)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는 정부 비밀 요원으로 훈련받는 여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악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킬러로 활동하다 정부 기관에 포섭되는 설정도 매우 유사하다.
▶ 존 윅 시리즈 (2014-)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존 윅' 시리즈는 '악녀'와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액션 촬영 기법과 연출로 주목받았다. 특히 장편 액션 시퀀스를 롱테이크로 처리하는 방식이나 긴박한 총격전과 격투 장면의 연출 스타일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 헌트 (2022)
이정재 감독, 정우성 주연의 '헌트'는 스파이물이라는 점에서 장르적 차이는 있지만, 국가 정보기관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화려한 액션 장면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악녀'를 좋아했다면 즐길 만한 작품이다.
7. 총평 및 별점
영화 '악녀'는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특히 김옥빈의 육체적 투혼과 몰입감 넘치는 연기, 그리고 정병길 감독의 과감하고 혁신적인 카메라워크가 돋보인다. 칸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국제적 수준의 액션 연출은 한국 영화의 기술적 성취를 대외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다.
다만 화려한 액션에 비해 다소 복잡하고 산만한 내러티브는 아쉬운 부분이다. 시간적 구성이 뒤섞여 있어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이며,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가 있다는 점은 작품의 완성도를 약간 깎아내리는 요소다.
나는 '악녀'에 5점 만점에 4점을 주고 싶다. 기술적 완성도와 액션 연출의 혁신성, 그리고 김옥빈의 열연은 높이 살만하지만, 내러티브의 산만함과 후반부의 불안정한 전개가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특히 하드코어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킬러와 복수극을 소재로 한 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 그리고 김옥빈이나 신하균 같은 배우의 팬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만 과도한 폭력과 잔인한 장면이 있으므로 시청에 주의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악녀'는 한국 액션 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 도전과 성취는 분명 기억될 만하다. 특히 김옥빈이 보여준 새로운 캐릭터 해석과 육체적 열연은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