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한 장면을 그린 대서사시, 영화 '안시성' 리뷰

우리 역사 속 숨겨진 영웅들의 이야기는 늘 감동과 울림을 준다. 특히 고구려의 역사는 수많은 전투와 영웅들로 가득한데, 그중에서도 안시성 전투는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꼽힌다. 2018년에 개봉된 영화 '안시성'은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을 웅장한 스케일로 재현해낸 작품이다. 오늘은 이 영화를 깊이 있게 살펴보며 그 매력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1. 영화 소개
제목, 개봉일, 장르, 러닝타임
- 제목: 안시성 (The Great Battle)
- 개봉일: 2018년 9월 19일
- 장르: 액션, 사극/시대물
- 러닝타임: 135분 (2시간 15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및 주요 출연진
- 감독: 김광식
- 주연: 조인성(양만춘 역), 남주혁(사물 역), 박성웅(당태종 이세민 역)
- 조연: 배성우(추수지 역), 엄태구(파소 역), 성동일(우대 역), 오대환(활보 역), 박병은(풍 역)
- 여배우: 설현(백하 역), 정은채(시미 역)
- 음악감독: 윤일상
간단한 영화 정보 및 배경
'안시성'은 645년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 벌어진 실제 역사적 전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당태종 이세민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과 5천 명의 고구려 군사들이 88일간 성을 지켜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당시 안시성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이 전투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함께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영화는 스케일이 큰 전투 장면과 생생한 역사적 배경을 재현하기 위해 약 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으며, 개봉 당시 추석 시즌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작품이다.
2. 줄거리 요약
제1차 고구려-당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당나라 2대 황제 이세민은 자신의 군사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 요동성을 비롯한 10개의 성을 함락시키며 파죽지세로 고구려 영토를 점령해나가는 당나라.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주필산 전투에서 참패하고, 이 전투에 참여했던 태학 생도 사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친구 눌함이 전사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전투 후, 사물은 연개소문의 명을 받아 안시성으로 향한다. 그의 임무는 '반역자'로 낙인찍힌 안시성주 양만춘을 암살하는 것. 그러나 안시성에 도착한 사물은 양만춘이 성민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는 존경받는 지도자임을 알게 된다. 양만춘은 사물의 의도를 간파하면서도 그를 받아들이고, 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을 세워나간다.
한편 당나라 군대가 안시성에 도착하고, 쉽게 함락될 거라 여겼던 성은 양만춘의 뛰어난 지휘 아래 첫 번째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다. 분노한 당태종은 더 강력한 공격을 지시하고, 공성탑을 이용한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양만춘은 기름으로 공성탑을 불태워 이 위기도 극복한다.
당태종은 마지막 수단으로 토산(흙산)을 쌓기 시작한다. 성벽보다 높은 거대한 인공 산을 만들어 성 안으로 병력을 쏟아부을 계획이었다. 안시성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지만, 양만춘과 성민들은 토산 밑에 땅굴을 파서 무너뜨리는 작전을 성공시킨다.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안시성의 결사적인 의지는 굽히지 않았다.
마지막 승부처에서 양만춘은 자신의 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당태종의 눈을 맞추며 상징적인 타격을 입힌다. 이와 동시에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 병력이 도착하면서 당태종은 불가피하게 퇴각을 결정한다. 결국 안시성은 40배의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88일간의 지난한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두게 된다. 역사는 이 위대한 전투를 통해 고구려인의 불굴의 의지와 용맹함을 기억하게 된다.
3. 감상 포인트
연출
김광식 감독의 연출력은 '안시성'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특히 전투 장면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수만 명이 부딪히는 대규모 전투부터 소규모 육박전까지, 각 전투마다 다른 색깔과 리듬감을 부여하면서 단조로움을 피했다. 또한 웅장한 스케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과감한 롱숏과 파노라마 촬영을 활용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토산을 무너뜨리는 장면이다. 마치 실제로 산이 무너지는 듯한 압도적인 시각 효과와 함께 땅굴 속 인부들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어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또한 마지막 양만춘이 활을 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연출됐다.
연기
조인성은 양만춘 역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특히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라는 대사를 통해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장면은 영화의 주제의식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동시에 동생 백하의 죽음 앞에서 흘리지 못하는 눈물로 내면의 고통을 표현하는 섬세한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남주혁은 태학 생도 사물로서 성장하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처음에는 명령에 충실한 모습에서 점차 진정한 용기와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특히 그의 눈빛 연기는 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조연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성동일의 우대 역은 영화에 따뜻한 인간미를 더했고, 배성우의 추수지 역은 충직한 부하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박성웅이 연기한 당태종 이세민은 강인하면서도 교활한 적군 지도자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음악
윤일상 음악감독의 OST는 영화의 장엄함과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특히 전투 장면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타악기의 조합은 관객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음악과 영상의 싱크로율이 높아 전투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감정적인 장면에서는 절제된 선율로 여운을 남겼다.
영상미
'안시성'의 영상미는 한국 사극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구려 시대의 갑옷과 무기, 건축물을 재현하는 데 있어 디테일에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띈다. 특히 한국 영화로서는 드물게 대규모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안시성의 성벽과 내부 마을, 당나라 군영 등의 세트는 사실감 있게 제작되었다. 또한 사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오랜 시간 싸움이 이어지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도 돋보인다. 특히 비가 내리는 밤 장면과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색감 처리는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좋았던 장면이나 인상 깊은 대사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 양만춘
양만춘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병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우대와 일꾼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토산을 무너뜨리는 장면이다. 자신의 생존보다 안시성 전체의 안위를 위해 희생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양만춘이 고주몽의 신궁으로 당태종의 눈을 맞추는 장면도 압권이다. 단순한 활쏘기가 아니라 고구려의 정신과 의지가 담긴 한 발이었기에 관객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4. 영화 OST 음악
안시성의 OST는 대중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윤일상이 음악감독을 맡아 완성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윤일상이 처음으로 영화 음악감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조 스텝 없이 홀로 모든 작업을 완성해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영화를 위해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웅장함과 감성, 그리고 감각적인 요소가 조화된 사운드트랙을 만들어냈다.
OST는 총 58트랙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CD로 발매되었다. 대표적인 트랙으로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Introduction', 첫 전투 장면에 흐르는 'The Beginning of the Battle(전투의 시작)', 그리고 절정의 순간을 장식하는 'An Intense Battle(치열한 전투)' 등이 있다.
특히 양만춘이 당태종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고구려의 기상과 의지를 웅장하게 표현해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울림과 동양적인 선율의 조화는 영화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윤일상은 OST 작업을 통해 단순히 영화의 배경 음악을 넘어, 작품의 정서와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음악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의 귀에 맴돌며 '안시성'의 감동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5. 장점과 단점
장점
- 압도적인 스케일과 웅장한 전투 장면: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전투 씬은 관객들에게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공성탑 전투와 토산 무너뜨리는 장면은 충분한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 전략적인 전투 묘사: 단순한 칼질과 화살만의 전투가 아닌, 지형과 환경을 활용한 다양한 전술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전쟁 영화로서의 깊이를 더했다.
- 오락성과 역사성의 균형: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오락성을 잘 갖추었다. 흥미로운 캐릭터와 감동적인 서사, 그리고 절묘한 긴장감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 매력적인 영웅상의 제시: 양만춘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매력적인 영웅상을 제시했다. 강인하면서도 인간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현대인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는다.
단점
- 캐릭터 발전의 부족: 일부 캐릭터의 발전과 심리 묘사가 다소 부족하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다 보니 조연들의 개성과 서사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 역사적 고증과 픽션의 경계: 역사적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는 픽션 요소가 많이 삽입됐다. 역사 영화이지만 사실상 팩션(faction)에 가까워, 역사적 고증을 중요시하는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을 줄 수 있다.
- 긴 러닝타임: 러닝타임 135분이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전투 장면들 사이에 호흡을 조절하는 장면이 부족하여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도 있었다.
- 과도한 신파와 비장함: 과도한 신파와 비장함이 때로는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 일부 감정선은 너무 극적으로 표현되어 현대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6. 비슷한 영화 추천
명량 (2014)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작품으로, '안시성'과 마찬가지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둔 역사적 전투를 다루고 있다. 웅장한 해상 전투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군함도 (2017)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의 역사를 다룬 작품으로, '안시성'과 같이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대규모 액션과 탈출 서사를 담고 있다. 역사의 아픔을 재현한 상세한 미술과 촬영이 돋보인다.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추창민 감독의 '광해'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으로, 정치적 갈등과 인간 드라마를 균형 있게 다룬 작품이다. 사극의 틀 안에서 인간적인 감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린 점에서 '안시성'과 통하는 면이 있다.
황산벌 (2003)
김영진 감독의 '황산벌'은 백제와 신라의 전투를 그린 작품으로, '안시성'처럼 한국 고대사의 한 장면을 스크린에 재현했다. 패배한 측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은 색다른 감상 포인트를 제공한다.
7. 총평 및 별점
"40배의 전력 차이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를 담아낸 대서사시"
'안시성'은 한국 전쟁 액션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대중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았고, 특히 전투 장면의 스케일과 작품의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역사적 고증에 있어 일부 아쉬움이 있고, 캐릭터 발전이 다소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극 영화 중에서는 손꼽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추천 대상:
- 한국 역사, 특히 고구려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
- 대규모 전투와 액션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
- 역사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 시각적 스펙터클과 웅장한 음악을 즐기는 영화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