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국내에서 개봉된 <리턴 투 서울(Return to Seoul)>은 단순한 입양인의 뿌리 찾기 이야기를 넘어,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겪는 정체성의 여정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프랑스에서 성장한 한국계 입양인 ‘프레디’가 서울을 방문하며 겪는 다양한 문화적 충돌과 감정의 변화는 관객에게 복잡한 질문을 던집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고향과 뿌리는 동일한가'와 같은 물음은, 입양인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주제입니다. 이 영화는 비판보다는 관찰, 결론보다는 질문을 택하며 여운을 길게 남기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깊은 인상을 줍니다.
입양의 현실과 감정적 충돌
<리턴 투 서울>의 시작은 매우 우연하게 펼쳐집니다. 프레디는 원래 한국에 방문할 계획이 없었으나, 비행 편이 취소되면서 우연히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이 예기치 못한 방문이 결국 그녀의 인생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며, 서울에서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프레디는 처음에는 단지 ‘구경’의 느낌으로 도시를 접하지만, 이내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서울에서 프레디는 입양인 등록 정보를 확인하고, 자신의 생모를 찾고자 입양기관을 찾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행정적인 벽,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에 부딪힙니다. 그녀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부족하고,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점차 불안과 혼란을 겪습니다.
영화는 프레디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겉으로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무던하게 적응하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이질감과 낯섦, 그리고 과거에 대한 미련이 교차합니다. 특히 생부와의 만남 장면에서는 이러한 감정이 절정에 달합니다. 생부는 프레디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가려 하지만, 프레디는 그가 오랜 시간 공백을 만든 것에 대해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느낍니다.
프레디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왜 자신을 낳았고, 왜 입양했는지. 그녀는 화를 내지 않지만, 대답 없는 질문 속에서 점점 더 고립감을 느낍니다. 이 영화는 입양을 드러내놓고 비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실’로서 입양을 조명합니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어떻게 흔들리고 또 구축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프레디가 만난 생부는 자신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그 방식은 불안정합니다. 그는 프레디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은 일방적이고 강압적입니다. 그는 프레디에게 가족 모임을 주선하고, 이름을 다시 지어주려 하며, 딸로서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프레디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이는 혈연만으로 가족이 될 수 없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상징합니다.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깊이 탐색합니다. 프레디는 프랑스에서 양부모와 함께 성장했으며, 자신을 키운 그들을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생물학적인 부모를 궁금해하고,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이 복잡한 감정은 많은 입양인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정체성의 중심에 있는 감정입니다.
서울에서 프레디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그녀의 삶에 들어오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딘가에 속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프레디는 한국에서 직장을 얻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듯 보이지만, 그 과정 또한 외로운 적응기입니다.
특히 프레디가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는 장면에서는, 그녀가 여전히 '가족', '소속', '정체성'이라는 핵심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어떤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떠돌이처럼 살아갑니다. 이는 입양이나 혈연 문제를 넘어서, 현대인의 보편적인 인간관계와 소속감의 부재를 상징하는 서사입니다.
정체성과 자아 탐색의 여정
<리턴 투 서울>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정체성입니다. 주인공 프레디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고민합니다. 프랑스에서 자랐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인 그녀는, 두 문화 모두에서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는 전 세계 입양인, 혼혈인, 혹은 다문화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감정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프레디가 서울과 프랑스를 오가며 겪는 ‘정체성의 흔들림’을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녀는 겉보기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내면은 매우 복잡하고 불안정합니다. 프레디는 연인을 사귀고, 자유로운 삶을 즐기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이 허상처럼 느껴질 만큼 감정적으로 비어 있습니다.
특히 그녀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적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프레디가 피아노 앞에서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은, 그녀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뿌리와 가족을 찾으려는 여정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상징합니다.
이 영화는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관객에게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이것이 바로 <리턴 투 서울>의 힘입니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삶 속에서 계속 변화하고 구성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달합니다.
<리턴 투 서울>은 단순한 입양인의 서울 방문기를 넘어,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물음인 ‘나는 누구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프레디라는 인물을 통해 이 영화는 입양의 현실과 복잡한 감정선, 문화적 차이,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외로움과 갈망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소속’을 원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소속이 우리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리턴 투 서울>은 그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귀향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정의 언어로 쓰인 이 작품은, 한 번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여운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