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 - 외로움에 관한 담담한 성찰

영화 소개
- 제목: 혼자 사는 사람들 (Aloners)
- 개봉일: 2021년 5월 19일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90분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홍성은 (데뷔작)
- 주요 출연진: 공승연(진아 역), 정다은(수진 역), 서현우(성훈 역), 김모범(옆집 남자 역), 김해나(팀장 역)
- 제작사: 한국영화아카데미
- 배급사: 더쿱, 엠라인디스트리뷰션(해외배급)
-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홍성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배우 공승연이 배우상을, 홍성은 감독이 CGV 배급지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단순히 1인 가구의 삶을 표면적으로 그린 영화가 아닌, 그 속에 내재된 현대인의 고독과 상실, 그리고 소통의 의미를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1인 가구 비율이 30%를 넘어선 현대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을 배경으로, 각자의 이유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특히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기획된 작품이지만, 팬데믹 이후 더욱 심화된 사회적 고립과 단절의 문제를 예견한 듯한 통찰력 있는 시선을 보여준다.
줄거리 요약
카드사 콜센터 최고의 상담원인 진아(공승연)는 완벽하게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직장에서도 동료들과 거리를 두며 누구와도 깊이 관계 맺기를 거부한다. 퇴근 후엔 이어폰을 끼고 외부 소리를 차단하며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텔레비전 소음을 채워 넣는 것으로 정적을 피하는 그녀에게, 가끔 말을 거는 옆집 남자(김모범)는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아는 그 옆집 남자가 고독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 몇 일 후에야 발견된 그 남자의 죽음은 진아에게 작은 충격을 준다. 그 뒤 회사에는 신입 상담원 수진(정다은)이 들어오고, 진아는 수진에게 1대1 교육을 맡게 된다. 특유의 정확한 매뉴얼 대로만 응대하는 진아와 달리, 수진은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혼자 살던 엄마의 집을 방문한 진아는 오래전 설치해 뒀던 홈캠을 통해 혼자 사는 엄마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동안 방치했던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엄마의 죽음 이후 변화된 가족 관계까지, 진아는 자신이 외면했던 여러 관계들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옆집에는 새로운 이웃(서현우)이 이사 오고, 그는 이전 거주자의 고독사 소식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웃들을 모아 고인을 위한 작은 의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런 주변인들과의 만남과 사건들을 통해 진아는 점차 자신이 쌓아올린 삶의 방식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진아가 완벽하게 구축했다고 생각했던 '혼자'의 세계는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 틈 사이로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온다.
결국 진아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하려는 시도를 한다. 엄마의 이름으로 저장된 휴대폰 번호를 아버지의 이름으로 바꾸는 작은 행동을 통해 진아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영화는 진아가 온전히 변화했다거나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굳게 닫혀있던 내면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감상 포인트
연출: 홍성은 감독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연출력을 보여준다. 특히 진아의 내면 변화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일상의 작은 디테일과 표정, 소소한 행동의 변화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진아를 둘러싼 공간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과 단절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그 거리가 좁혀지는 방식의 연출이 인상적이다.
연기: 공승연의 연기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표면적으로는 무감정해 보이지만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미세한 표정 변화와 눈빛으로 전달하는 그녀의 연기가 캐릭터의 깊이를 더한다. 특히 공승연이 연기한 진아라는 캐릭터는 말이 적고 감정 표현이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파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정다은이 연기한 수진 역시 진아와의 대비를 통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음악과 영상미: 이 영화는 화려한 음악이나 영상미보다는 일상의 소리와 정적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진아가 항상 끼고 다니는 이어폰, 늘 켜져 있는 TV 소리, 그리고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 등의 청각적 요소들이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촬영 또한 과장된 앵글이나 움직임 없이 인물과 공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들의 고립된 상태와 변화하는 관계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각본: 대사가 많지 않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각 장면과 상황이 주는 의미가 깊다. 특히 진아의 엄마가 남긴 영상에 담긴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 옆집 남자의 죽음, 콜센터에서 정신이상을 보이는 고객과의 대화 등 영화 속 여러 에피소드들이 진아의 내면 변화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인상 깊은 대사: "사람 들고 나는 것이 티도 나지 않는 세상"이라는 진아의 대사는 현대 사회의 단절된 인간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진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영화의 근본적인 질문은 관객들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영화 OST 음악
이 영화의 음악은 임민주, 박상철, 이한솔 작곡가가 맡아 인상적인 사운드트랙을 완성했다. 특히 영화의 분위기와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반영한 배경음악들은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울림을 준다. 진아의 일상을 따라가는 담담한 피아노 선율부터, 그녀의 내면에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표현하는 현악기의 섬세한 연주까지, 음악이 영화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특히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곡은 진아의 외로움과 고립감, 그리고 서서히 찾아오는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음악은 과하지 않게 필요한 장면에서만 등장하여 영화의 정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음악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상의 소리, 혹은 완벽한 침묵만이 존재하는 장면들이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장점과 단점
장점
- 현대 사회의 단절과 고립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섬세하게 다룬 작품성
- 공승연의 뛰어난 연기력과 캐릭터 표현
- 말보다 시선과 표정, 소리와 정적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섬세한 연출
- 과장 없이 일상의 진실을 담아낸 현실적인 스토리텔링
-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구성
단점
- 다소 느린 전개로 액션이나 극적인 전환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지루할 수 있음
- 중심 캐릭터의 변화가 미묘해 일부 관객들에게는 불분명하게 느껴질 수 있음
-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쉬움
- 부차적 인물들의 캐릭터 발전이 다소 제한적임
- 결말이 완전한 해결보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이라 명확한 종결감이 부족할 수 있음
비슷한 영화 추천
1. '벌새' (2018) - 김보라 감독의 '벌새' 역시 인물의 내면과 성장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과 유사한 감성과 섬세한 연출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사회적 배경을 통해 인물의 성장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 '우리집' (2019) -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은 가족의 의미와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대 한국사회의 가족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3. '오마주' (2021) - 신수원 감독의 작품으로, 예술과 삶,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감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섬세한 감정 묘사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4. '아스팔트의 여신' (2020) - 삶의 전환점에 서 있는 인물의 내면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과 비슷한 감성을 준다.
5. '소공녀' (2017) -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는 자발적으로 최소한의 삶을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로,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과 공명한다.
총평 및 별점
홍성은 감독의 데뷔작 '혼자 사는 사람들'은 화려한 기법이나 극적인 전개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섬세한 힘을 가진 영화다. 현대 사회에서 '혼자 사는 것'의 의미를 단순히 외로움이나 고립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과 관계의 의미를 탐구한다. 특히 공승연의 뛰어난 연기와 홍성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만나 진아라는 캐릭터의 내면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타인과 맺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정답이 있다고 강요하지 않는 열린 결말을 통해, 각자의 방식대로 '함께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다.
이 영화는 특히 현대 사회의 단절과 고립감에 공감하는 사람, 섬세한 감정 묘사와 내면의 여정을 좋아하는 관객, 그리고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전개보다 일상의 소소한 진실을 담은 영화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9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동안 진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