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꽃, 유관순 -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리뷰

영화 소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이다. 2019년 2월 2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조민호 감독의 연출로, 3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서 겪었던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드라마/시대물 장르의 이 작품은 총 러닝타임 1시간 45분으로, 개봉 12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9년 상반기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라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에 개봉되어 더욱 화제가 됐으며,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작품 정보
- 제목: 항거: 유관순 이야기 (A Resistance)
- 개봉일: 2019년 2월 27일
- 장르: 드라마, 시대물
- 러닝타임: 105분 (1시간 45분)
- 감독: 조민호
- 각본: 조민호
- 촬영: 최상호
- 음악: 장영규
주요 출연진
- 고아성 (유관순 역)
- 김새벽 (김향화 역) - 수원 지역 기생들의 만세 운동을 주도
- 김예은 (권애라 역) - 개성 시위를 이끈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 정하담 (이옥이 역)
- 류경수 (니시다 역)
- 박신삼 (임자혜 역)
- 나누리 (최난씨 역)
- 정소영 (어윤희 역)
이 작품은 3·1운동 이후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유관순 열사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8호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도 함께 조명하고 있다. 특히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감옥 안에서 겪었던 고난과 연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 숨겨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줄거리 요약
1919년, 일본 제국 경찰이 서대문 감옥으로 한 여자 죄수를 이송해 온다. 수인번호 371번, 얼굴이 퉁퉁 부은 그녀는 바로 '유관순'이었다. 유관순은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고향인 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부모님이 현장에서 희생당한 슬픔 속에서도 꿋꿋하게 만세를 외쳤고, 결국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수감된다.
3평도 안 되는 비좁은 서대문 감옥 8호실. 이곳에는 다양한 계층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기생 출신의 김향화를 비롯해 개성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와 농촌 출신의 여성들까지 각자의 사연을 안고 함께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 달랐던 여성들이 점차 유관순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간다.
일제의 모진 고문과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유관순은 결코 굴하지 않는다. 그녀는 세상 정보를 파악하고 3·1운동 1주년을 계획하고자 감방 밖의 노역을 자처한다. 가장 힘든 세탁장 노역이었지만, 그녀는 이를 통해 다른 수감자들과 소통하며 옥중 만세운동을 준비한다. 그러나 일본 간수들은 유관순의 활동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점차 그녀에게 더 가혹한 고문을 가하게 된다.
감옥 내에서도 그녀는 독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진 고문으로 몸은 망가져 가도 결코 정신만은 꺾이지 않았던 유관순.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옥중에서도 만세를 외치며 저항을 이어간다. 간수들의 감시와 폭력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더 강한 의지를 보이던 그녀는 결국 심한 고문과 영양실조로 인해 1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저항 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은 동료 수감자들을 통해 감옥 밖으로 퍼져나간다.
영화는 유관순의 마지막 1년간의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한 인물의 영웅적 서사를 넘어, 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그려내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되살려낸다.
감상 포인트
차분하고 절제된 연출
조민호 감독의 연출은 화려한 기교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담담하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흑백 화면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과 서대문 감옥의 차가운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유관순이 고문당하는 장면에서도 직접적인 폭력을 과하게 노출하기보다는 고통받는 그녀의 표정과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상황의 잔혹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짧은 머리카락과 마른 체구,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내면의 강인함을 드러내는 눈빛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각자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앙상블의 힘을 보여줬다. 특히 김새벽이 연기한 기생 출신 김향화 캐릭터는 유관순과는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통해 영화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해줬다.
인상 깊은 장면과 대사
유관순이 법정에서 한 이 대사는, 그녀의 결연한 의지와 조국에 대한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대사다. 또한 서대문 감옥 8호실 여성들이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장면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전한다. 일본 간수들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만세를 외치는 모습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또한 유관순이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비좁은 감옥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래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며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모습은 단순한 저항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영상미와 음향
최상호 촬영감독의 카메라 워크는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답답함과 억압감을 표현하면서도,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흑백 화면 속에서도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가끔씩 나오는 회상 장면에서의 컬러 화면은 자유로웠던 과거와 암울한 현재의 대비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장영규의 음악 또한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전통 악기를 활용한 배경음악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잘 어우러지며, 극의 감정선을 따라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 OST 음악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음악은 영화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역할을 했다.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대한이 살았다'는 박정현, 김연아, 정재일이 참여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이 곡은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면서도, 현대의 리스너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영화에는 실제 유관순과 옥사 동료들이 불렀던 노래가 재현되어 등장한다. 특히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석별의 정'은 배우들이 직접 부른 곡으로, 감옥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을 가슴 뭉클하게 전달한다. 이 노래는 100년 전 실제 서대문 감옥에서 불렸던 노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면서도 오늘날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전통 국악 요소와 현대적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시대극에 맞는 사운드트랙을 완성했다. 특히 유관순이 고문 받는 장면에서의 절제된 음악 사용은 오히려 그 상황의 잔혹함을 더 극대화했으며, 만세를 외치는 장면에서의 웅장한 곡조는 그들의 의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했다.
안예은이 부른 '8호 감방의 노래'도 인상적인 OST 중 하나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강인한 정신과 감옥 안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서정적인 멜로디에 담아냈다. 이 노래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장점과 단점
장점
-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재현: 허구와 상상력을 최소화하고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의 진정성을 높였다.
-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의 재조명: 유관순 뿐만 아니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다루었다.
-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고아성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여 감동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 절제된 연출과 영상미: 과잉 연출 없이 흑백 화면을 통해 시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 감동적인 OST: 영화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높여주는 음악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단점
- 다소 느린 전개: 감옥에서의 일상을 차분하게 그리는 과정에서 때로는 영화의 템포가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 유관순 이전의 배경 부족: 서대문 감옥에 들어오기 전 유관순의 삶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하여 그녀의 성장 과정과 운동가로서의 변화를 더 자세히 보여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 일부 인물의 단순화: 일본인 간수들의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져 갈등 구조가 단순화된 측면이 있다.
- 감정적 거리감: 흑백 화면과 절제된 연출이 때로는 관객과 인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어내어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장단점은 개인의 취향과 영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역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차분한 전개도 영화의 장점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반대로 극적인 긴장감을 중시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려는 의도가 때로는 영화적 재미와 충돌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 균형을 잘 유지하며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비슷한 영화 추천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감상하고 여운이 남는다면,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를 다룬 다음 영화들도 추천한다.
1. 동주 (2016)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그린 이 작품 역시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항거'와 마찬가지로 흑백 화면으로 제작되었으며, 저항 시인이었던 윤동주와 그의 친구 송몽규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저항 정신을 그려낸다. 특히 개인의 삶과 시대적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을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항거'와 유사하다.
2. 말모이 (2019)
'항거'와 같은 해에 개봉한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문화적 독립운동이라는 측면에서 '항거'와 공통점을 갖는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독립운동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암살 (2015)
'암살'은 1933년 상해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은 독립군들이 친일파와 일본 고관을 암살하려는 작전을 그린 영화다. '항거'보다 액션과 오락적 요소가 강하지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당시의 복잡한 시대상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4. 밀정 (2016)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 스릴러로, 독립운동가와 일본 경찰 사이에서 이중 첩자로 활동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항거'와는 장르적 성격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독립운동의 다양한 양상과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함께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1919 유관순'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항거'와 함께 본다면 유관순 열사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다. 또한 '봉오동 전투'와 '귀향'도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추천할 만하다.
총평 및 별점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단순히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유관순의 모습과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여성들의 연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적 감동을 놓치지 않았으며, 고아성을 비롯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이 영화는 독립운동의 영웅을 신화화하는 대신, 인간 유관순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그 의미를 더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차분한 연출과 절제된 감정 표현이 때로는 관객에게 거리감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영화의 진정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 영화는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은 관객과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또한 흑백 영화나 차분한 페이스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더불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 자유와 독립의 소중함,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이들의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정신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